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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6/11/14 나에겐 꿈이 없었다 . (34)
다들 기억해 ? '나에겐 꿈이 없었다 .' 란 대사로 시작하는 영화를 .



만화방을 들락거리기 시작한게 담배를 태우기 시작한 고2때부터였어 . 난 지금도 그렇지만 그 당시에도 후까시 이딴거 엄청 중요해서 화장실에서 담배는 도저히 못 태우겠더라고 . 그건 내 가오가 허락치 않는 일이었어 . 암튼 그래서 장소를 찾다보니 만화방이 제격인거야 . 마침 우리 집 옆에 만화방이 있었는데 꿉꿉한 파자마 바람의 아저씨들이 런닝바람으로 오는 그런 곳이라 내가 담배를 피우러 숨어들기에 아주 좋은 곳이었어 . 그런 분위기는 웬지 편안하니까 .

맨처음 만화를 접했던게 4살때의 '보물섬' 이었어 . 아 , 이름도 아주 예술이지 . '보물섬' 이라니 . 뭔가 모험과 환상의 나라가 막 펼쳐질거 같고 그렇잖아 . 초등학교 들어가면서 엄마는 보물섬 대신에 그거랑 비슷한 두께의 다른 책을 사줬지 . 표준전과 . 그땐 나름 수재소리 들을때라 표준전과도 재밋었어 . 그리고 1 , 2년 . 학교공부도 슬슬 재미없어질 무렵의 어느 날에 막내삼춘이 놀러왔는데 , 만화잡지를 들고 왔더라고 . 오는 길에 볼려고 산건가봐 . 난 표지를 보고 성인 만화잡지임을 직감했지 . 대수인가 . 일단 만화니까 보는거지 .

이상의 '오감도' 를 형체를 알수 없는 그림으로 풀어낸 만화도 있었고 , 정말 깼던건 , 아직까지도 뇌리에서 잊혀지지 않는 장면은 군복을 입은 털이 북실북실한 돼지가 (한국) 남자를 발로 밟고 한 손에 (한국) 여자를 잡고 있었던 거였어 . 그 그림은 만화 속의 주인공이 그린 그림인데 , 그게 엄청 쇼킹하긴 했었나봐 아직도 기억하는걸 보면 . 암튼 그게 우연이었는지 , 만화방에서 내가 처음으로 잡은 만화책이 '오 ! 한강' 이었어 . 난 거기서 그 돼지를 다시 조우했지 . 그리고 허영만이 대단한 만화가라는걸 그제서야 알았지 . 내 나이 열여덟살에서야 ! 아니 , 어쩌면 열여덟살에라도 알게 된게 다행일지도 모르지 . 뭐 아무튼 그 뒤로 허영만 만화만 존나게 봤어 . 그 사람 만화면 무조건 재밋을거다란 확신 비스무리한게 생긴거지 .

그러다 본게 '비트' 였어 .

적으나마 용돈을 얼마씩 받았었는데 담배값으로 다 날리니 늘 만화방에서 동전을 세는 신세였는데 그래서 아마 하루에 다섯권씩만 봤었나 그랬던거 같아 . 감질났지만 재밋었지 . 그때 비트를 보면서 이런 쓸데없는 생각을 한 기억이 나네 . 아 , 민이는 공부도 좆나 못하고 학교도 중퇴했는데 로미와 비교했을때 지적 수준이 그다지 많이 떨어지지는 않는다 … 라는건 역시 사람은 공부는 안 해도 책은 많이 봐야 하는구나 … 뭐 그런거 . 사실 지금 생각해보면 민이를 로미에 비교했을때 지적 수준이 떨어지지 않는다가 아니라 로미를 민이에 비교하면 로미는 지적수준이 약간 떨어진다일수도 있는것 같아 . 솔직히 허영만 , 좋아하는 만화가이긴 하지만 그 사람 만화에서 '여자' 란 존재는 늘 좀 약간 비하되어있는 듯한 느낌이 있었걸랑 . 물론 이런 생각도 지금에서야 말하는거지 . 그땐 이걸 표현 못해서 늘 무의식 속에 자리했었는데 아마 그때의 그 만화들이 지금의 나를 마초로 만든건지도 모른다고 핑계를 대보고는 싶지만 난 남 탓하는건 별로 안 좋아하니까 넘어가고 .

그렇게 고2를 보내고 고3 , 엄마는 컴퓨터를 사줬어 . 지금 생각해보면 엄마의 일생일대의 실수 중에 하나지 . 컴퓨터 아저씨가 물어보더라고 . 갖고 싶은 게임 CD나 VCD가 있으면 가져다주겠다고 .

"비트요 ."

씨발 그 날부터 하교만 했다 하면 좆나게 비트만 보는거지 .

내가 제일 좋아하는 캐릭터는 조환규였어 . 만화에서의 조환규 (임창정) 는 그리 눈에 띄는 캐릭터는 아닌데 , 영화에선 감초 역할을 튼실하게 해냈지 . 그리고 조환규는 현실과 '싸우는' 사람이었거든 . 그것이 영웅적인 것은 아닐지언정 최소한 민이처럼 현실에 끌려가면서 살진 않았어 . 내 첫 닉네임도 '조환규' 였지 . 덕분에 온라인상에선 남자로 오해도 많이 받고 … 그때 또래 동호회에서 비트를 좋아하는 다른 두 친구를 만났는데 , 내가 조환규라니까 한 놈은 자기가 민이다 , 한 놈은 자기가 태수 한다 막 이 지랄들을 해요 . 한동안 친하게 지냈지 . 그리고 2년 뒤에 민이랑은 의절했어 . 부산 어디 나이트에서 삐끼한다는 말을 들었는데 , 그 말을 들은것도 3년전이라 지금은 어디서 뭐하는지 잘 모르겠어 . 조환규는 촌구석에 틀어박혀서 닭을 튀기는데 , 이 민은 뭐하고 있는지 .

'나에겐 꿈이 없었다 .' 이거 알지 ? 비트 , 이 대사로 시작하잖아 . 나 얼마전에 닭 튀기고 있는데 갑자기 뇌리에서 이 문장이 확 스쳐지나가는거야 . 영화 전체의 대사를 다 외울 정도로 많이 봤던 영환데 지김은 기억나는 대사가 저거 하나뿐이더라고 .

그렇지 , 나에겐 꿈이 없을수밖에 없었지 . 뭐 본게 있어야 그걸 이용해서 상상을 구체화시킬거 아냐 . 아는만큼 보인다고 , 그 말이 딱 맞아 . 조또 아는게 없으니 꿈이 안보이는거야 . 비트를 보고 어떤 애들은 '이 민' 이라는 캐릭터를 우상으로 여겼을지 몰라도 - 하긴 학교 다닐때 다리에 마후라빵 한번 내본 일이 없는 나도 그 만화로 어느정도 대리만족을 하긴 했지만 - 꿈도 없는 빙신인거지 그냥 .

그렇지만 사실 난 저때의 감성을 그리워하고 있어 . 담배를 피우기 시작한것도 , 20세기의 끝에 무엇이 있는지 알수 없었기 때문이야 . 난 뭐라도 해야만 했어 . 착하게만 살다 가긴 좆나 싫은거야 . 수능시험 끝나고 학교를 나오는데 , 혹시 비트의 그 장면 기억하냐 ? 이 민이 로미를 찾느라 걷는 길이 좆나 흔들리는거 . 학교를 나오는데 딱 그렇더라고 . 물론 난 약같은건 하지 않았어 . 술도 마시지 않았고 거짓말을 하는것도 아니야 . 분명 그 길은 흔들렸어 . 난 그때 알았지 . 아 , 나의 10대는 끝났구나 .

그리고 20대가 된지 벌써 몇년이 흘렀고 , 이젠 자기가 수십번도 넘게 본 영화를 , 바이블처럼 여겼던 그 영화를 , 대사 하나도 기억 못하는 사람이 되었잖아 . 난 '나에겐 꿈이 없었다 .' 란 대사를 다시 떠올리긴 했지만 아마 비트를 다시 챙겨보진 않을것 같아 . 길게 쓰다보니 뭔 말을 했는지도 모르겠네 . 오늘은 날이 차다 . 따뜻하게 해서 푹 자 .




안녕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