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에 이글루에서 한참 글을 쓰던 시절에도 잠깐 언급했지만 사이즈가 땅콩만한 남자에게서 처음으로 - 자위가 아닌 섹스에서 - 오르가즘을 느꼈던 5년전의 나는, 지금은 이렇게 이야기한다.

"자지 크면 다 좋아요."

어쩌다 그런 강박증이 생긴걸까. 평소에 지인들에게 이야기할땐 '닳고 닳은 노처녀처럼 이야기하는 여자들에겐 호감이 안 간다.' 고 이야기하던 나였는데 내가 지금 딱 그 꼴이지 않은가. 뭐가 사이즈가 대수야 대수긴. 네가 처음 오르가즘을 느꼈던 남자는 충족감 따윈 전혀 없었던 존만한 남자였다고!
변명 하나 하자면 이상하게 섹스에 관한 이야기는, 남자들하고 할 기회가 더 많았다. 누군가와 섹스를 했다는 이야기를 하면, 십중팔구 대부분의 남자들은 두가지 혹은 세가지를 묻는다.

크냐?

응? 아니 뭐 크기는 뭐 큰거 같던데…

거봐 씨팔 남자는 역시 사이즈야! 얼마나 오래 하디?

뭐 한… 어림잡아 한시간 정도?(여기서부터 슬슬 건방져진다)

거봐 씨팔 남자는 역시 지구력이야! 테크닉은 어떻더냐?

몰라 뭐 그냥 엎었다 뒤집었다 난리가 나더라고 낄낄

남의 탓 하기는 싫지만, 아무튼 그래서 어느샌가부터 아랫도리는 여잔데 대가리속은 남자가 되어버렸다. 역시 남자는 사이즈, 지구력, 테크닉… 을 중얼대면서. 섹스의 즐거움을 처음 알게되었을때의 순수했던 내 자신은 어느새 점점 사라지고 마초 한마리 만이 남아있을 뿐이었다.

몇달전에 누군가와 섹스를 했을때다. 이 친구를 오늘내로 보내버리려고 갖은 감언이설로 꼬셔서 합방까지 성공했는데, 사이즈는 내가 생각한것만큼 썩 만족스러운 편은 아니었다. 다만 그래도 섹스가 꽤 좋았던 것이, 내가 버꾸기를 날리는 와중에 그 친구나 나나 이미 흥분할대로 흥분해버린 터라, 그 흥분을 고스란히 침대까지 가져가서 좋았던것도 있고. 사실 가장 흥분했던 부분은, 그 친구는 말투도 그렇고 생김새도 그렇고 침대에서도 젠틀했는데, 열심히 허리운동을 하던 와중에 정말 들릴듯 말듯 하게 '아… 씨발….' 이란 말을 내뱉은 것이었다(후에 이 에피소드를 지인에게 이야기하자 그는 '아 씨발 그건 계산된 멘트야 계산된 멘트!' 라고 일갈했지만 계산된 멘트를 그렇게 적절한 상황에서 적절한 억양과 적절한 크기로 말할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좋아? 좋아?' 혹은 '너무 좋아.' 라는 확인성 대사보다 훨씬 마음에 와닫는 독백이었고, 순간 질근육이 순식간에 수축해 나는 수초내로 오르가즘을 느꼈었다.

반대의 예로 적절할지 모르겠지만, 다른 누군가와 섹스를 했을 때였다. 이때는 꽤나 공부하는 자세였었다. 나의 만족과 그의 만족을 동시에 추구하기 위해서. 그의 어느 부분이 성감대인지, 어떤 체위가 우리에게 맞는지 등등을 이야기하며 섹스를 했는데 어찌 된것이 그래도 잘 되지 않았다. 내가 지금 맞게 하고 있는건지, 그의 흐름이 끊어지진 않을지 계속 신경이 쓰여서 머릿속이 복잡해 나의 흥분에는 전혀 집중할수가 없었다. 예전에 술먹고, 그의 집에서 돌발적으로 그와 거의 반나절 동안에 걸쳐 한 두서너대예닐고여덟번의 처음 섹스가 훨씬 흥분된다고 생각됐다. 그때는 그의 사이즈가 어떤지 체위가 어떤지는 상관없었고 그냥 좋았으니까.

나는 어리석게도 마초처럼 사이즈, 지구력, 체위 등을 염두하는, 머리로 하는 섹스를 줄곧 하고 있었던것 같다. 몸과 머리, 모두에게 솔직해질수 있는 날이 언제쯤이나 올까. 고정관념을 버리기는 참 힘들다던데. 조금 더 머리를 비워야만 하나보다.